1997년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

하나는 국내 경제구조 때문이라는 설이고, 또 하나는 단기 국제자본 이동 때문이라는 설이다.

이 차이는 대체로 위기 이전의 경제체제를 어떻게 보는가와 관련이 있다.

위기 전경제체제를 불건전하다고 보는 경우 경제구조를, 건전하다고 보는 경우 단기자본을 위기의 원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기 이전 한국의 경제체제는 불건전했지만 그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은 아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위기 전 한국경제는 단적으로 기업의 이윤율이 차입금 이자율을 하회하는 불건전한 상태에 있었다.

1991년부터 1996년간 제조업 평균 자기자본 이익률은 8.0%인 반면,차입금 평균이자율은 11.8%였다.

그렇지만 이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은 아니었다.한국경제의 그런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며, 당시 중국은 한국보다 기업과 금융 부실이 더 심했지만 외환위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외환위기의 원인은 단기외채

당시 단기외채가 증가한 것은 전반적으로 자본이동이 통제된 상태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된 무역신용과 은행 간 차입이 원인이었는데, 그 큰 부분이 일본 은행들에 대해 진 것이었다.

그러다가 1997년 여름 일본 은행들이 자국 내 금융 위기로 자금을 회수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당시 한국 정부는 외채에 대해 지불보증을 하면서 일본 은행들이 대출을 회수 하지 않도록 일본 정부에 ‘행정지도’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 정부는 처음에는 호응하였고 나아가서 외화준비금을 지원할 구상도 내비쳤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미국이 제동을 걸고 나오면서 무산됐다.

미국은 그렇게 해서 한국을 IMF로 가도록 만들고, IMF와 미국은 한국의 국내 경제구조, 즉 ‘패거리 자본주의(cronycapitalism)’가 위기의 원인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IMF의 구제금융으로도 위기가 진정되지 않자 미국 정부가 나서서 채권은행을 설득하여 채무 갱신, 즉 ‘행정지도’를 함으로써 해결했다.

일본 정부에게는 못하게 했던 것을 미국 정부 스스로는 한 셈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금리, 구조조정, 자본시장 완전개방 같은 위기의 원인과 직접 관계가 없는 미국의 요구가 100% 관철됐다.

외환위기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그 해결책도 위기의 원인과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IMF와 미국의 요구를 불건전했던 위기 이전의 경제체제를 개혁하는 동력으로 삼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용했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성과는 무엇보다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경영의 건전성과 투명성이 크게 올라간 것이다.

단적으로 2002년부터 2007년간 제조업 평균 자기자본 순이익률은 12.8%인 반면 차입금 평균이자율은 6.5%였다.그러나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위기 후 당장 외자를 상대로 국내 자산의 대규모 헐값투매(firesale)가 일어났을 뿐 아니라, 구조조정의 결과가 실물경제의 성과 향상으로 나타나지 못했다.

그런 한편 투자 부진, 고용사정 악화, 양극화, 출산율 하락 등이 이어졌다. 거기에다 그 때의 위기 처리방식은 현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현 위기는 1997년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6~7개월간 한국이 외환위기 직전상황까지 가게 된 원인은 기본적으로 1997년과 같다. 은행의 무역신용과 은행 간 차입 형태로 단기외채가 쌓인 상태에서 해외에서의 금융 불안으로 그것을 갑자기 갚아야 하는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한국은 놀랍게도 10여 년 만에 두 번씩이나 같은 방식으로 위기를 맞게 된 셈이다.물론 두 위기의 원인이 꼭 같지는 않다.

1997년에는 은행이 금리 차 때문에 적극적으로 선진국에서 단기자금을 빌려서 장기로 대출했다. 경화(硬貨) 표시로 빌려 연화(軟貨) 표시로 대출했기 때문에 만기 불일치(termmismatch)뿐 아니라 통화 불일치(currency mismatch) 문제도 있었다.

반면 지금의 단기외채는 은행이 수동적으로 지게 된 것이 많다. 예컨대 은행의 조선업체 환 헤지 관련 단기외채는 은행이 조선업체의 선물거래에 응하는 과정에서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거래에는 통화 불일치 문제는 없고 기간 불일치 문제만 있다.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외부 여건이 나빠질 때 유동성 위기를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다.

이런 식의 위기 발발 가능성에 대해 1997년 위기 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기자본시장을 개방하는 데 따르는 위험 요인은 민간의 위험관리 능력과 정부의 금융감독 능력 제고로 대처한다는 방침이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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